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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정의 활동/토지정의 이야기

순리에 따르는 부동산정책

두 번 정도 비가 내리고 9월로 접어드니 제법 시원해졌습니다. 한창 더위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에는 이 나라에 여름 외에 다른 계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무덥기만 하더니 이제는 밤에 불과 며칠 전 습관대로 창문을 열어두고 잠을 청하다가는 자칫 감기라도 들 것처럼 꽤 쌀쌀해 졌습니다. 제 아무리 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여름이라는 계절 속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고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여지없이 그 더위는 한 풀 꺾이게 마련이고 자연의 순리대로 가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며칠 전 정부의 부동산 대책발표가 있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취득세 인하, 장기 주택 모기지 공급 확대 등을 통한 매매수요 전환 촉진, 월세 소득공제 확대 등을 통한 전월세 부담 완화, 임대주택 공급 확대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금번 부동산 대책의 방향은 매매시장 활성화에 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이는 지난 20일 대통령이 "전세 시장에 집중된 수요를 매매시장으로 돌려서 매매와 전세시장 간의 균형을 맞추도록 하는 정책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데에서도 잘 들어납니다. 다시 말해 어떤 식으로든 매매 수요를 진작시켜 전세 시장 수요를 떨어뜨려 양 시장간 균형을 맞추겠다는 것이고 이러한 매매시장 수요진작의 방법으로 택한 것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및 취득세 인하의 세제 혜택, 그리고 장기 주택 모기지 공급의 대출 촉진인 것이지요.

 

하지만 이번 대책은 효과성뿐만 아니라 윤리적 정당성이나 부동산 정책의 거시적 방향성 모두에 있어 좋은 점수를 주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우선 그 효과성 측면을 보면, 현재 부동산 시장을 냉정하게 돌아보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현재 시장은 부동산 매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없다고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이를 반증하는 대표적인 수치가 현재 8이상에 달하는 수도권 지역의 PIR(Price to Income Ratio: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입니다. 적정 수준을 높게 잡아도 5정도임을 감안한다면 여전히 시장 참여자들이 가격이 과도하게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앞서 언급한 혜택들로 매매시장의 수요가 진작될 리가 만무합니다.

 

윤리적 정당성 여부를 살펴볼까요? 현재의 비정상적 전세가 폭등 및 전세공급 품귀 현상이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입니까? 시장 현상을 단편적인 원인으로 분석하는 것은 물론 위험이 따릅니다만, 그럼에도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현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과 MB 정부가 매매시장 거품이 급격히 빠지고 있는 와중에도 고집스럽게 지속한 뉴타운정책 등을 비롯한 중대형 주택 공급정책 및 이로 인한 전월세 위주의 저렴주택 멸실에도 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이 나라가 빠르게 변화하고 이전 것은 쉽게 잊는다고 하더라도 불과 얼마 전까지 국민들의 욕망을 부추기는 ‘소유자 사회’ 정책을 집요하게 밀어붙였던 정당이 현 정당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강산도 변하기 전에 세금 혜택을 제공해 줄 테니 대출받아 부동산을 구입하라고 정부가 다시 국민을 ‘독려’하고 있는 형국인 것이지요. 또한 참여정부 당시 공급확대를 주장하며 거품 확대에 일조했던 이들 중 한 사람이 현 서승환 장관임을 감안할 때 정책에 대한 윤리적 정당성을 아무리 찾아보려고 해도 찾을 길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부동산 정책의 거시적 방향성입니다. 금번 대책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일진대 바로 정부가 여전히 매매 시장의 정책 방향을 시장참여자들의 불로소득에 대한 욕망을 자극함으로써 거품에 기반을 둔 매매시장 활성화에서 찾으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진정 매매시장과 임대시장 간 균형, 그리고 시장 안정화를 달성하고자 한다면 토지불로소득과 이에 대한 욕망을 토대로 형성되는 거품을 자극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방향을 잡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단기 처방은 전월세 상한제 도입 등이 있을 것이고 중기 처방으로는 밀실일로로 치달았던 공공임대 및 토지임대형 주택 공급 강화가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보다 길게는 부동산 거래세 등을 보유세로 대체해 나감으로써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원천에 방지함과 동시에 이를 통해 부동산 시장의 효율을 극대화하면 될 것입니다.

 

다시 날씨 이야기로 돌아가 봅니다. 개인적으로, 정부가 여전히 불로소득과 이를 통해 형성되는 거품에 대한 소유자의 욕망과 그 메커니즘에 기반한 정책만 고집하는 다소 부자연스러운 모습이, 마치 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돌아오는 가을을 온 몸으로 거부하고 계속해서 다습한 더위로 가득한 여름만을 고집하는 모습은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계절의 원칙에 순응하는 날씨의 흐름처럼 작금의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원칙과 순리에 맞게 바뀔 순 없는 걸까요?

 

토지정의시민연대 운영위원장 조영민